‘MZ세대’ 정치인 가브리엘 보리치 의원(35)이 남미의 신흥 경제 강국 칠레 대통령에 당선됐다. 1986년생으로 세계 최연소 대통령이 된 보리치는 내년 취임 후 4년간 칠레를 이끈다.
2004년 칠레대 로스쿨에 입학한 보리치가 정계에 뛰어들게 된 것은 칠레 대학생연합(FECH) 회장으로 2011년 공교육 투자 확대를 요구하는 대규모 학생 시위를 이끌면서다. 칠레를 이끄는 ‘100명의 젊은 지도자’에 선정될 정도로 이목을 끈 그는 2013년 무소속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최다 득표로 하원 의원에 당선됐고 2017년 재선에 성공했다. 보리치가 대선 주자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2019년 칠레 전역을 휩쓴 대규모 시위의 영향이 컸다. 정부가 수도 산티아고의 지하철 요금을 30페소(약 43원) 인상한 것을 계기로 반(反)정부 시위에 불이 붙으면서 칠레가 정치적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져든 것. 칠레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3000달러(약 1550만 원)로 중남미 최고 수준이지만 인구의 45%가량이 빈곤층에 속해 있다. 2019년 칠레의 국공립대 등록금은 8317달러(약 990만 원)로 영국(1만2330달러), 미국(9212달러)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뉴욕타임스는 “보리치는 전통적인 대선 후보들과 달리 팔뚝에 타투를 하고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강박증으로 입원했던 사실을 솔직하게 공개하기도 했다”며 “정치 변화를 불러올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
1986년 2월 칠레 남부 푼타아레나스에서 태어난 보리치는 내년 3월 취임하면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36·여)를 제치고 현직 국가수반 중 최연소 지도자가 된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19일 치러진 칠레 대선 결선투표 개표율이 99%를 넘긴 가운데 보리치 좌파연합 후보는 55.9%의 득표율로 44.1%를 얻은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기독교사회전선 후보(55)를 앞섰다. 1990년 칠레 민주화 이후 대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놓친 후보가 결선 투표에서 승리한 건 보리치가 처음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카스트 후보는 이날 오후 트위터를 통해 “지금 이 순간부터 보리치가 대통령 당선자”라며 패배를 인정했다. 보리치 후보는 대선 승리를 선언하며 “나는 모든 칠레인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 이 엄청난 도전을 앞에 두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마침내 칠레는 지난해 국민투표를 통해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정권 시절 제정된 헌법을 폐기하고 새로운 헌법을 만들기로 했다. 올해 5월 새 헌법을 쓸 제헌의회를 구성한 데 이어 이날 대선에서 세계에서 가장 젊은 지도자를 선출했다. 갈수록 악화되는 양극화의 그늘 속에서 개혁을 바라는 칠레 민심이 MZ세대를 선택했다는 분석이 있다.
보리치의 당선이 확정된 다음날인 20일(현지시간) 칠레 페소화 가치는 3% 이상 급락하며 사상 최저치로 주저앉았다. 이날 칠레 페소·미국 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3.6% 상승한 875.21페소를 기록했다. 페소·달러 환율 상승은 페소 가치 하락을 뜻한다. 이날 페소·달러 환율 상승폭(페소 가치 하락폭)은 10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올 들어 페소 가치 하락률은 18.5%다.
칠레 증시도 폭락했다. 주요 지수인 S&P IPSA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6.2% 하락 마감했다. S&P IPSA 지수는 장중 한때 전 거래일보다 7.45%까지 밀렸다. MSCI 칠레지수는 10.45% 떨어지며 지난 5월 이후 하루 낙폭으로는 최대를 보였다. 보리치의 리튬회사 국유화 계획 등 기업 규제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세계 2위인 칠레 리튬회사 SQM 주가는 14% 폭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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