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리벨리온의 차세대 NPU인 ‘리벨-쿼드’ 샘플 칩을 자사 파운드리에서 생산했다. 이 칩은 엔비디아의 프리미엄 GPU인 H100, B100 등을 겨냥한 고성능 AI 반도체다. 4개의 코어를 UCIe(범용 칩렛 인터페이스) 기반으로 연결한 칩렛 구조를 채택했으며, 연산 성능은 2048TFLOPS(테라플롭스), 소비 전력은 350~700W 수준이다. 제조는 삼성의 4나노 공정에서 진행됐다.


리벨-쿼드는 리벨리온이 처음으로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탑재한 NPU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최신 5세대 HBM인 삼성전자 HBM3E(12단 구조)를 적용해 메모리 대역폭을 4.8TB/s까지 끌어올렸다. 이 성능은 수백억 개 파라미터를 가진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단일 칩으로 구동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고 회사 측은 설명하고 있다.


최근 AI 반도체에서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HBM이 부각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 시점에서 NPU의 성능은 사실상 메모리반도체, 특히 HBM의 성능에 의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AI가 텍스트를 넘어 이미지, 음성, 영상 등 다양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멀티모달 형태로 진화하면서 메모리 대역폭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퓨리오사AI가 HBM3를 장착한 NPU 양산을 시작한 데 이어, 리벨리온까지 HBM을 탑재한 제품을 내놓으면서 한국 반도체 스타트업들이 본격적으로 하이엔드 AI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퓨리오사AI는 1.5TB/s의 대역폭을 구현했으며, 리벨리온은 한발 늦게 출발했지만 더 진화한 HBM3E를 사용해 성능 경쟁에 나선 모양새다.


흥미로운 점은 두 기업이 서로 다른 제조사의 HBM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리벨리온은 삼성전자의 HBM을, 퓨리오사AI는 SK하이닉스의 HBM을 사용하고 있다. 리벨리온의 주요 투자자 중 SK하이닉스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메모리 공급처가 변경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록 스타트업이 확보하는 HBM 물량은 크지 않지만, 이들의 기술 개발과 시장 진입에 미치는 상징적 의미는 크다는 분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스타트업이 지금은 물량이 적더라도 향후 빠르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이들을 잠재적인 주요 고객으로 보고 협력 관계를 넓히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삼성 파운드리가 소규모 팹리스 기업들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선제적으로 지원에 나서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라고 전했다.